January 02, 2021
2019.03.21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쉽게 답하기 힘든 질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을 인간이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추구해야하는 가치, 일종의 삶의 목적으로 표현합니다. ‘행복은 삶의 궁극적 목적, 목표이다.’ 맞는 말처럼 들리죠.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돈을 버는 것도, 좋은 직업을 가지고 높은 지위에 오르려는 것도 결국 행복하게 살기 위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서은국 교수는 이 책에서 행복에 대해 조금 낯선 이야기를 합니다. 행복이란 인간이라는 동물이 성공적으로 생존하고 번식하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감정이라고 말이지요. 즉 행복은 생존과 번식을 위한 수단이라는 것입니다 현생인류는 대략 20만년 전에 탄생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중 문명을 이루고 생활한 기간은 6천 년 정도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하루로 바꾸면 문명이 시작된 시간은 밤 11시 17분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지금처럼 다른 동물과 구분되어 특별하게 살아온 시간은 하루로 치면 약 43분 정도 되는 것입니다. 나머지 23시간 17분의 시간동안 인간은 철저하게 동물인 채로 살아왔습니다. 이 책은 바로 그 점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인간은 철저한 동물이다.’
그렇다면 행복이 어떻게 생존과 번식의 수단이 될까요? 어떤 행동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그 행동에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합니다. 생존하기 위한 행동들에 뇌가 제공하는 인센티브가 행복인 것이지요. 만약에 뇌가 생존과는 전혀 관계없는 행동에서 행복을 느낀다면 어떻게 될까요? 예를 들어 인간이 수렵과 채집으로 살아가던 시기에 먹을 것에도, 사람에게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오로지 나무의 나이테를 세는 것에서만 행복을 느끼는 남자가 있었다고 칩시다. 그는 사냥을 나가는 것, 여성을 만나는 것, 무리속에서 생활하는 것 어느 것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하루 종일 나무 앞에 쪼그려 앉아 나이테를 세면서 행복감을 느낍니다. 이 남자의 유전자가 후대로 전해질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결국 먹고 사랑하는 것에서 행복을 느꼈던 사람들만이 자신들의 유전정보를 후대로 전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위의 예시는 조금 과격하기는 하지만 우리의 유전정보 안에는 반드시 생존과 번식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성공시키기 위한 기제가 저장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서은국 교수는 여러가지 예시와 실험 결과들을 통해 행복은 진화의 산물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행복이 어떤 것인지 알았으니, 이제 행복이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아야 겠죠. 이 책에서 비중 있게 다루는 행복의 특성 중 하나는 바로 ‘행복은 지속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becoming과 being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원하는 대학의 학생이 되는 것(becoming)과 학생으로 생활하는 것(being)은 엄연히 다릅니다. 합격 통지서를 받은 순간은 너무나 기쁘지만 그것이 대학을 다니는 4년동안 지속되지는 않죠. 저자의 말에 따르면 행복의 이러한 특성 역시 생존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사냥을 떠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먹은 고기로부터 얻은 행복감은 오늘 사라져야 합니다. 그래야 내일도 그 행복을 느끼기 위해 사냥을 떠나기 때문이죠. 따라서 행복은 강도(intensity)가 아니라 빈도(frequency)라고 말합니다. 강렬한 행복감 한 번 느낀 인생보다 작은 행복감을 여러 번 느낀 인생이 더 행복하다는 것이지요. 이처럼 행복의 특성들을 알게 되면 이것을 내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알 수 있겠죠?
행복해지려면 우선 행복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행복은 주로 철학 분야에서 다뤄져 왔습니다. 그 결과 행복은 살면서 달성해야 할 ‘가치’라는 생각이 학계에서, 또 사회적으로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행복을 철학의 관점이 아닌 진화론에 기반한 과학적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이를 통해 행복은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가치가 아니라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감정이라는 새로운 정의를 내립니다. 행복이 미래지향적인 목표가 아니라 지금 당장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것을 안다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태도가 바뀔 수 있지 않을까요? 책을 덮으면서 드는 생각입니다.